요즘 젊은이들에게 ‘부자간에는 사랑과 공경의 친애함이 있다’는 부자유친을 훈시하는 것은 낡은 유교사상을 강요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하늘이 내렸다는 천륜의 정(情)도 가끔 신문 한 귀퉁이를 장식하는 미담 기사로나 확인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피자나라 치킨공주」 월피점 이용분 점주(51)와 그녀의 둘째딸 이은영(21) 씨의 모녀애는 부박한 세상에 귀감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오픈 1년여만에 전국 320여개 체인점 가운데 매출 수위를 달리게 된 것도 실상 이들 모녀의 남다른 사랑에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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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야채 손질은 제가 할테니 그만 쉬세요.” “너야말로 다리 아프지? 의자에 좀 앉아 있어.” 안산시에 자리 잡은 「피자나라 치킨공주」 월피점에 들어서는 순간 모녀간에 훈훈한 실갱이가 벌어진다. 지난해 5월말 ‘얼떨결에’ 외식업에 발을 들여놓은 이용분 점주. 남편의 사업과 건강이 기울면서 생활 전선에 직접 나서게 됐고, 소자본으로 시작할 장사거리가 있을까 인근 부동산 업자에게 물어본 것이 그대로 피자나라 치킨공주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 | 다. 마침 그 부동산 업자가 피자나라 치킨공주 가맹계약을 검토중이었던 터라 그녀에게도 적극적으로 창업을 권유한 것.
외식업 초보 엄마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한 딸 2천500여만원을 갖고 집 근처에 12평 매장을 얻어 시작한 피자·치킨 배달전문점은 예상 외로 힘들었다. 본사 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매뉴얼에 따라 메뉴를 만들었지만 난생 처음인‘음식장사’는 의욕과 정성만으로는 순조롭지 않았다. 일이 손에 익지 않은 상태에서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배달직원은 툭하면 말도 없이 그만두거나 문제를 일으켰다. 저녁시간이면 헐레벌떡 회사일을 마치고 구원투수처럼 나타나는 은영 씨가 고마웠지만 피로로 붉게 충혈된 딸의 눈과 마주칠 때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하는 후회도 물밀 듯 밀려왔다. 이런 가운데 배달을 나갔던 직원이 오토바이를 탄 채 도망을 치거나 매출액을 횡령하는 등의 ‘사고’가 잇달았다. 결국 먼저 결단을 내린 이가 바로 은영 씨. 금융계통의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점포 운영에 전적으로 매달리기로 한 것이다. “오늘 하루 또 무슨 사고가 생기지 않았을까, 엄마 혼자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을까… 퇴근하는 순간까지 가게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엄마를 전적으로 돕는 것이 능률적이라고 판단했죠.” 지극한 효심이 아닌 이상 스물 남짓한 젊은 아가씨가 하루 12시간 이상 기름 냄새 가득한 매장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을 나갔다가 타박상을 입은 것만도 수차례.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온몸이 쑤셔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이 ‘억척스런’ 엄마 덕에 명절 연휴 외에는 가게문을 닫아 본 적 없어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전무한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엄마를 돕겠다는 결심을 후회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그녀. 오히려 어린 시절 막연하게 품었던 조리사의 꿈이 가맹점 운영을 통해 더욱 견고해졌으니 지금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값진 순간이 아니냐며 눈빛을 또렷이 한다. 조리학과 진학을 목표로 피곤한 가운데 틈틈이 수능 준비를 하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박수까지 보내고 싶어진다.
뜨거운 모녀애만큼 호흡도 ‘척척’ 두 모녀의 일과는 정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문이 들어오면 딸은 냉장고에서 숙성시킨 생지를 꺼내 피자 도우를 만들고 엄마는 토핑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토핑만은 제가 직접 해요. 사람마다 손맛이 다르기 때문에 토핑 재료를 이 손, 저 손으로 만지면 맛이 달라질까봐서요. 적어도 월피점에서 배달되는 음식맛은 언제나 동일하다는 평을 듣고 싶거든요. 얼떨결에 시작한 외식업이지만 어느덧 이런 고집도 생긴 걸 느낄 때면 스스로에게 놀라죠.” 피자&치킨으로 이뤄진 세트메뉴 비중이 높기 때문에 분주히 손을 놀리는 것이 관건. 오픈 초기 주문에서 배달까지 1시간30분씩 걸린 적도 있다는 모녀는 척척 맞아 떨어지는 호흡으로 현재는 30여분 안에 배달을 종료한다. 틈틈이 닭을 손질하는 모녀에게 하루에 20~40수를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특히 판매량이 급증하는 토요일을 대비해 금요일에는 영업이 끝난 즉시 밤을 새가며 손질을 하는데 손이 아플 때까지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100수를 넘기기 일쑤다. 이렇게 두사람이 판매하는 피자&치킨 세트량은 일평균 70~80개. 주말이면 120세트를 판매할 때도 있다. 근거리에 치킨이며 피자가게가 5~6개나 몰려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편으로 소위 ‘오픈 특수’를 누리다가 점차 매출이 줄어드는 보통의 외식업소와는 달리 갈수록 매출이 늘어나 단골층이 날로 두터워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이제는 배달에 그치지 않고 매장에 직접 찾아와 한 귀퉁이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모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고객들도 생겼다. 특히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답례 전화라도 걸려오는 날이면 하루의 피로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240℃로 구워낸 피자보다 뜨거운 모녀애를 과시하는 두 사람은 딜리버리샵 운영 노하우를 충실히 쌓아 본격적인 잇인(eat-in) 음식점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우선은 은영이가 올 수능을 잘 치러 원하던 공부를 맘껏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름 밴 앞치마 대신 예쁜 스커트 입고 친구들과 미팅도 하고, 영화도 보고…. 반듯한 성품을 가진 아이라 조리공부도 훌륭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애정표현에 적극적이지 않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 속에 애처로움과 배려가 가득 담긴 모녀를 보며 여러 사랑의 유형 중에 으뜸은 역시 가족애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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